15화<권력이라는 방패>
그는 변하지 않았다. 언제나 한결같은 웃음으로 날 맞이했다. 변한게 있다면, 그건 바로 나였다. 그래서 서러웠다. 그는 이렇게 한결같은데, 나는 비겁하게 변모하며 권력이라는 방패 속에 숨어 살고 있었구나. 그렇다고 지금 권력의 방패 속에서 나가면, 방패는 창이 되어 나를 찍어 누를텐데. 지금, 15년지기 친구가 추방당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나는 내가 추방당할 거라는 걱정만 하고 있구나. 내가 서러워 울 자격은 있는걸까?
채현진은 나의 어두운 모습을 보고 당황한 듯 했다. 그래, 나도 밝은 사람이었지... 권력이라는 방패는 나를 지켜주는 조건으로 내 모든 것을 앗아갔다. 내 모습, 내 성격, 내 사상까지... 나는 지금까지 '추방으로부터의 보호'라는 조건에 혹해 내 모든 것을 헌납했다.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왔다. 하하하하하. 이 어이없는 상황을 내 손으로 선택했다는 점이 더 어이가 없었다. 하하하하하하하.
채현진이 나를 걱정스러운 듯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걱정과 반가움이 중첩되어 있었다. 이것은 그 자체였다. 다른 것에 기대지 않은, 오롯이 그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를 보고, 나는 결심했다. 나도 하찮은 방패따위에 의존하지 않고, 일부라도 좋으니 '나'를 다시 찾을거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저 비운한 친구를 도와야 했다.
"현진아, 너는 지금 추방당할 위기에 처해있어. 너는 지금 법적으로 죽은 사람이야."
나는 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리고, 때를 기다리자고 했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일단 권력 안에 숨어있어야만 했다. 모순된 행동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났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아, 몇 개는 있겠다. 현진이는 숨어 살게 되었고, 국민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깨달았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핑계로 5인 이상의 집회와 결사를 금지했을 때도, 가짜뉴스 방지를 핑계로 언론 통폐합을 했을 때도, 46010710명 모두 찬성했다. 국민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깨닫고, 자신의 생존이 두려워 모든 안건에 찬성한 것이다. 그래서 할 일이 없어진 나는, 고위 간부 음식 서빙이나 하고 있었다. 국민들은 힘겨운 삶을 사는데, 그들은 호의호식하며 혈세를 물흐르듯 쓰고 있었다. 이런저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들었다.
"저스틴 대답 안해?!!!"
아, 정신이 확 드네.
"무슨 일이십니까?"
"발할라 국민이 46010711명이라는 소문이 있어."
"네? 발할라 국민은 46010710명인ㄷ..."
순간, 내가 채현진을 살려준 일이 떠올라 말을 끝내지 못했다. 다행히 최택헌은 눈치채지 못한 듯 하다.
"소문이 사실이야?"
"아닙니다! 어디선가 가짜 뉴스가 퍼진 듯 합니다. 진위 여부 파악해서 다시 보고하겠습니다!"
"이틀 후까지 보고해"
휴, 죽는 줄 알았네. 최택헌이 등을 보인 사이, 나는 갑자기 한 궁금증이 생겼다. 최택헌은 언제 들어왔을까? 이를 알기 위해 나는 조심스럽게 한 기계를 꺼냈다. 바로 발할라 일련번호 조사기. 나는 그가 나만큼은 아니더라도, 오랜 기간 머물러 반란을 준비했을 거라고 믿고있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나의 공산주의 정치가, 들어온지 며칠밖에 되지 않은 사람에게 무너졌다고는 생각하기 싫었다. 그러나 그의 일련번호를 본 순간,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53990217"
발할라 일련번호 수가 54000000을 돌파한 시기가 최택헌의 집회 당일 새벽 2시니까... 그는 들어온지 거의 하루만에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발을 뗄 수 없었다. 최택헌이 나를 이상한 듯 쳐다보자 그제서야 나는 발길을 돌렸다. 이 사실을 채현진에게 말하자 채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때가 왔어. 어차피 추방당할 거, 제대로 깽판치고 가주지."
다음날, 발할라 서쪽 끝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최택헌이 언제 들어왔는지 아십니까? 바로 집회 바로 전날, 혹은 집회 당일날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들어온지 2주 남짓한 사람에게 속고 계셨습니다! 제가 누구냐고요? 저는 발할라에 15년째 거주중이고, 최택헌에 의해 첫 번째로 공식적으로 추방당한, 채현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외칠겁니다! 국민이 자유로워야! 나라가 돌아간다! 최택헌은! 물러ㄴ..."
그 순간, 최택헌이 멀리서 채현진에게 총을 겨누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채현진은 15년간 살던 발할라에서 한 순간에 추방당했다. 최택헌에 의해... 눈물이 났지만 참아야 했다. 옆에 최택헌이 있으니.
"채현진을! 살려내라! 최택헌은! 물러나라!"
4천만 국민들의 함성이 온 발할라를 울렸다. 다급해진 최택헌은 내게 말했다.
"뭐해! 빨리 경찰 병력 보내서 탄압해야지!!"
"예 알겠습니다. 주인님. 그 전에..."
"?"
"주인님 먼저 발할라에서 나가주셔야 하겠습니다, 주인님?"
작가의 말: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미 없었다고요? 그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화 부터 한 두화 정도는, 화자가 바뀔 예정입니다! 20화 완결을 목표로 쓰고 있습니다! 안 궁금하시다고요? 에이, 그래도 참고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