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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폴리매스소설] 꿈의 세계는 없다-17화
△π 2020.05.24 17:00 조회 752

17화-최택헌 이야기 2

 
 이미 늦었다. 난 이미 피해자가 아닌, 별 것도 아닌 일 가지고 질질 짜는 찌질이가 되어있었다. 아이들은 이미 나를 낙인 찍어 놓았다. 별 것도 아닌 일? 웃기고 있네. 니들이 당해보던가. 니들이 심부름 해보고, 니들이 돈 뺏겨 보던가. 니들이 길 가다가 이유도 모르고 부딪혀 보던가. 알지도 못하는 가해자들이 난리를 치고 있네.
 
 "야 저기 찌질이 온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 웃지마. 쟤 또 웃었다고 이른다?ㅋㅋㅋㅋㅋㅋㅋ"
 
  장난하나. 할 말을 잃었다. 아이들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아 슬프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유치하고 치사해서 상대 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이런 학교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이런 일이 흔한 학교다.
 
  원래 내가 이렇게 괴롭힘 받기 전에는, 한 아이가 이런 일을 겪고 있었다. 그 아이는 어떻게 이 상황을 이겨냈을까? 용기를 내어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저기 혹시... 진짜 실례되는 얘기지만 나도 너와 같은 상황을 겪고 있잖아... 혹시 이럴 때 어떻게 해야할 지 알 수 있을까...?"
 
 "야, 꺼져 빨리! 너 때문에 나 또 쟤들한테 찍혀서 고생하면 너가 책임질거야? 나도 힘들어. 나도 힘드니까 빨리 꺼져! 뭣도 안되는 게 괜히 고생하게 까불고 있어..."
 
 아... 나와 같은 처지에 놓였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는 이미 밑을 탈출하여 그들과 똑같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이 아이는 동정을 받을 수 있을까? 전혀 아니다. 이 아이도 그들과 똑같다.
 
 "야 찌질이! 너 지금 빨리 따라와!"
 
 박민후 목소리다. 괜히 안 따라갔다가 어떤 험한 꼴을 볼 지 모르니 일단 따라가 본다.
 
 전혀 아프지 않다. 전혀. 멍이 들어도 이건 전혀 아프지 않다. 내가 진짜 아픈 건, 그들의 가시 돋힌 말이 나의 귀를 찌르고 파서 내 뇌를 공격했기 때문이다.
 
 "야, 얘 또 이르니까, 눈에 보이는 부분은 때리지 마."
 
 "ㅋㅋㅋㅋㅋ야 쟤는 지가 왜 맞는지도 모를 걸?"
 
 맞다. 나는 왜 내가 이렇게 맞아야 하는지, 어쩌다 내가 이런 처지가 되었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짧게 맞고 끝났지만 앞으로는 더 맞겠지? 눈 앞이 깜깜했다.
 
 예상대로였다. 한 달이 지났지만, 나는 그대로였다. 맨날 그들에게 맞고, 돈을 빼앗기고 하는 처지였다. 학교가 가기 싫었다. 배워가는 것도 없고, 어차피 가면 돈은 ㄷ 돈대로 잃고,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맞기만 할텐데... 그렇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릴 수도 없었다. 나는 더 이상 부모님을 힘들게 하기 싫었는데, 나 까짓 거 하나 힘들다고 부모님까지 힘들게 만들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 일을 내가 부모님께 말하면, 부모님은 당연히 슬퍼하실 거고, 바로 신고하실 거고, 그러면 일이 더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돈을 뺏기고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그들이 돈을 다 빼앗아가서 돈이 없어졌다.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할까? 부모님께서 아시면 어떡하지? 그래도 말씀드려 보자. 도둑질을 할 수는 없을 터이니.
 
 "엄마..."
 
 "응? 우리 아들 왜?"
 
 "저 용돈 좀 올려주세요..."
 
 "어디에 쓰려고?"
 
 "..."
 
 "어디에 쓸 거냐니까?
 
 "아 몰라요! 그냥 빨리 주세요!"
 
 "어머머 얘가 왜 이래? 너 무슨 일 있어?"
 
 "...저 학교 가요."
 
 이렇게 뛰쳐 나오듯 학교에 와버렸다. 아까 대화를 계속 되새김질 하면서. 내가 무턱대고 엄마한테 돈을 달라고 했다. 충분히 맞아도 싸고, 혼나도 싼 상황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내게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하였다. 그런 엄마를 뒤로 두고 나는 짜증이나 내면서 나왔다니. 정말 내 자신에게 화가 나는 상황이었다. 준비물 살 겨를도 없이 학교에 와버렸다.
 
 "야! 돈!"
 
 "어...없는데...?"
 
 "헛소리 하고 있네. 뒤져서 나오면 10원에 한 대씩^^"
 
 그들은 내 몸을 뒤졌다. 나는 그래도 안심했다. 이 말도 안되는 '10원에 한 대' 제안은 내가 돈이 없어서 기각될테니.
 
 "여기 5000원이 있네 택헌아^^ 너 설마 우리한테 주기 싫어서 숨긴거야? 500대 맞아야겠네^^"
 
 저 5000원은 뭐지?!?! 아!!!!! 준비물 살 돈!!!!!!!!
 
 그렇게 나는 500대를 맞았다. 너무 아파 일어날 힘도 없었다. 내 체력은, 내 핸드폰처럼 3% 남아있었다. 엄마한테 문자가 하나 와있었다.
 
 "아들^^ 오늘 엄마가 어디 쓸 건지 캐물어서 미안해ㅠㅠ 우리 아들이 어디 헛 쓸 사람이 아닌데ㅠㅠ 바로 엄마가 어떻게 해서든 준비할게^^"
 
 나는 이렇게 저 아이들에게 돈을 헛 쓰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의 문자를 본 순간, 3% 남은 체력은 0%로도 모자라, 음의 영역으로 떨어져 가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붐비는 높은 타워가 있다. 나는 그 타워에 가서... 떨어져 보기로 했다. 더 이상 이렇게 살아가면, 부모님께 해만 끼치고, 그 가해자만 떵떵거리며 잘 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나는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을, 아니, 기억될 가치조차 없는 사람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34층을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 했는데, 옆에 익숙한 사람이 보였다. 전학 오기 전 초등학교에 같이 다녔던, 내 절친이었던 장은석이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너무나도 반가워했다.
 
 "야 택헌아! 잘 지냈어?"
 
 잘 지냈냐고? 아니? 하지만 왠지 나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아직도 나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구나. 내가 잘 지내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었구나. 내가 잘 지내기를 바라는 사람이 은석이 뿐일까? 아니? 내가 잘 지내기를 바라는 사람을 생각해 보았다.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우리 가족들...
 
 내가 아까 무슨 생각을 했었지? 설마 부모님이 내가 죽었다고 좋아할 줄 알았던 건가? 내가 계속 살지 않고 죽으면, 해를 끼치지 않아서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했었나?
 
 내가... 아까 무슨 생각을 했었지? 진짜 진짜 바보같은 생각이었다. 이런 나야 말로, 정말 불효자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부모님을 놔두고 먼저 죽을 생각을 한 거지? 부모님께 너무 죄송했다.
 
 34층에 도착했을 때는, 나는 이미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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